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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아름다운 후쿠시마의 하늘과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의 오만함이 부른 과오를 악착같이 청산하고 있다.” (요시다 마사오)
원전 문제는 탈원전 등 정치적 갈등 소재가 된 지 오래다. 지난달 20일 한국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데이스’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엮여 “김건희 여사가 국내 방영을 막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둘러싼 논의 본질은 정치적 갈등보다 훨씬 심오하다. 원자력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인간은 그걸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에서 파헤쳐 읽어야 하는 메시지다.
2011년 3월11일, 9.0 규모 대지진이 발생해도 후쿠시마 제1원전 중앙제어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침착하게 원자로가 긴급 정지된 것을 확인하고 냉각 절차를 진행한다. 격납기 압력과 온도가 너무 내려가자 IC(냉각)를 멈출 정도다. 매뉴얼에 있는 상황이라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침착함은 여기까지. 최대 15m가 넘는 쓰나미가 덮치자 전체 전원이 상실된다. 비상용 발전기도 정지해 냉각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진 것. 중앙제어실은 이제 암흑으로 변한다.
“전체 전원 상실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스리마일도 체르노빌도 전원은 있었고 원자로를 모니터하는 계기는 모두 살아 있었습니다.” 대책을 마련 중인 ‘면진중요동’에서 매뉴얼을 열심히 찾던 직원이 당황하며 하는 말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재난은 예측을 빗겨 가며 흘렀다.
격납 용기 압력이 기준치를 넘어가며 원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비규환 상황이 이어진다. 무용지물이 된 시스템 앞에서 현장 사람들은 여러 기상천외한 방법을 시도한다. 원전 내부의 밸브를 열어 가스와 대기를 방출시키는 ‘벤트’, 해수를 배관에 연결해 강제로 열을 식히는 방법 등이다. 회사 몰래 해수 투입을 결정하고 나서 요시다 마사오 현장 소장은 말한다. “세계 최초로 벤트를 했어. 해수 주입도 세계 최초야. 매뉴얼은 없어. 그런 사태에 돌입한 거야.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야 해.”
결국 빌딩 고층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는 펌프 카가 이용되고, 미국의 물자 지원, 자위대 투입 등에 힘입어 원전 압력은 내려간다. 이 지점에 오기까지 현장 인원들의 시행착오가 드라마를 이끄는 주요 뼈대다. 요시다 마사오 소장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리 손으로 만든 원전인데, 폭주를 시작한 그 녀석을 어떻 하면 좋을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저 물을 계속 넣었다. 배관을 통해 원자로 내부에 물을 붓고 상공에서 물을 뿌리고 건물 밖에서도 물을 부었다 오로지 그것만 반복했다”고 말한다. 전문가도 제어하지 못하는 원전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더데이스는 ‘일본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 원자력의 위험성, 방사능 피해보다 현장 사람들의 대응에 초점을 맞춰 ‘최선을 다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우리 잘못이 아닌 ‘천재지변’ 탓을 돌리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드라마에서 연이어 부각되는 사람들의 분투, 고난이 오히려 원전 사고의 본질을 보여준다. 시스템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각오’, ‘정신력’, ‘희생’이 부각되는 것 자체가 매뉴얼로 예측할 수 없는 원전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무엇을 예상해 준비를 해도 제어할 수 없는 괴물 말이다.
만약 원전의 폭주를 멈추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불타는 원자로 하나로 원전 6대 모두가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면? 총리의 질문에 교수는 “중간에 멈출 수 없다”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 170km 내 구역 사람들이 전부 죽는다는 것. 250km 근방은 수십 년간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 된다는 것. 5000만 명이 집을 잃고, 일본 3분의 1 토지를 몇십 년간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8화 마지막화 제목 <일본 붕괴의 시나리오>처럼 한 나라가 그 자리에서 멈춘다는 뜻이다.
흔히 ‘리스크’는 사고 확률과 예상 피해를 곱해서 계산된다. 드라마 내내 허둥지둥하는 수십 년 경력의 전문가를 보며 원전 사고 확률이 정확히 계산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예상 피해는 어떨까. 상관 명령에 발전소 지하로 갔다가 수몰된 20대 청년, 대대로 내려온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되는 사람들,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방사능 피폭된 수많은 군인들, 휴식을 취하지 못해 한달동안 혈뇨를 보는 현장 직원들. 그들의 피해는 어떤 숫자로 계산될까. 민간기업이었던 ‘도쿄전력’은 사고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리스크를 계산했을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상황에서 여권은 ‘비과학’, ‘가짜뉴스’를 자주 언급한다. 행복추구권이 있는 개인의 불안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다. 가짜뉴스 낙인 속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일본에 ‘충분히’ 대응했냐는 주장은 묻힌다. 일본 정부는 사고 당시 벤트를 시도할 때조차 망설인다. 원전 안의 가스와 대기가 방출되기 때문이다. 안전성을 묻는 총리 말에 도쿄전력 간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말한다. “무엇을 안전하다고 정의할지에 따라 다르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어떻게 물었을까.
현장을 지킨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내레이션으로 드라마는 끝난다. 그 내레이션이 드라마 내 숨겨진 원전의 본질을 꿰뚫는다.
“건설 당시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미래의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희망의 발전소를 우리 손으로 부수는 날이 올 것이란걸. (중략) 우리는 폐연료를 추출해 낼 방법도 보관 방법도 알지 못한다. 최종 처리 방법이 결정되는 건 아주 먼 미래다. 폐로 작업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후쿠시마현 하마도리 사람들은 살아온 집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11만7000명이 고향을 떠나 수만 개의 빈집이 생겼다. 40여 년 전 우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에 콘크리트 벽을 쌓아 야생동물에게서 집을 빼앗았다. 이번엔 인간이 터전을 잃었다. 일찍이 우리가 ‘밝은 미래’라고 부렀던 거대한 건축물은 앞으로 몇십 년에 걸쳐 직면해야만 하는 부끄러운 유산이 됐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아름다운 후쿠시마의 하늘과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의 오만함이 부른 과오를 악착같이 청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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